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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탄신일 공휴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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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곡
댓글 0건 조회702회 작성일22-04-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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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탄신일 공휴일 지정



한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든 유럽·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이든 가릴 것 없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가가 특정종교에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특혜는 ‘국가종교[國敎]’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지위를 얻어낸 종교가 휘둘렀던 권위와 힘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서운 것은 근대 이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역사를 돌아보거나 최근 일부 이슬람 국가가 신정(神政)일치 체제를 도입하면서 보여준 모습에서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웃 중국에서도 2000여 년 전부터 ‘유교만을 존중한다’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세워 거의 국교에 가까운 지위를 부여하고 이에 저항하거나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사상과 인물에 대해서는 무거운 벌을 주었다. 이에 영향 받은 한국도,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斯門亂賊)’ ‘이단(異端)’이라는 딱지를 붙여 유교, 특히 성리학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한국에 불교가 들어와 대승불교 교학을 확립하고 독특한 선 수행 체계를 세웠으며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던 것과 유럽에서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삼았던 역사 상황은 매우 다르다.

1945년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리고 각기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면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며 노래했던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너무 짧게 끝나고 말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불교와 천도교·대종교 등 오랜 세월 겨레와 고락(苦樂)을 함께 해온 전통 종교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뜻밖의 어려움을 만나게 된 것이다.

편의상 미군정이 실시된 남쪽에 한정해서 이야기 하자. 미군이 진주하고 일본군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1945년 10월 19일자 《자유신문》에 따르면 군정청에서 1월 1일,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평화기념일(11월 11일), 추수감사일(해마다 적당한 날을 정함), 크리스마스(12월 25일)를 전국의 관공서와 초·중·고·대학 등 각급 학교가 휴무하는 공휴일로 제정·공포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이 중에서 ‘추수감사일과 크리스마스’는 누가 보아도 기독교의 축일(祝日)이었으니,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어쩔 수 없이 ‘기독교적인 리듬과 시간’에 따라 살아가게 된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공휴일 지정과 함께 “송전(送電)과 라디오 방송 시간이 대폭 늘어나고, ‘성탄절 특사(特赦)’라는 형태로 재소자들의 특별사면이 이루어지고, 전쟁 후에는[1953년 이후] 예외적으로 통행금지까지 해제되는 날이 되면서 국민적인 축제일로 변해갔다.” 강인철, 《종속과 자율: 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 제3장 <‘개신교 정권’의 점진적 형성(2): 특권 종교로의 도약>, 108쪽.


기독교(개신교) 선교 사명감에 지나치게 투철하여 미국 국무부의 방침에도 어긋나는 정책을 밀고 나가면서, ‘정교분리’를 중시했던 연합국사령부 산하 민간정보교육국과 긴장을 일으키기도 했던 사령관 맥아더의 지휘를 받은 미군정이 취한 정책은 그 시대 상황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바뀌지 않고 이어졌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맥아더 못지않은 기독교 선교 열정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리고 개인차원에 머물러야 할 이 ‘열정’을 국가 정책에 쏟아 넣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유영익은 심지어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사실상 형해(形骸)화시키면서 기독교를 장려함으로써 …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 대한민국은 …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장려정책에 힘입어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정권을 창출했고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됐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이승만은 집권 기간 내내 ‘기독교만을 존중하는 독존기독(獨尊基督)’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의 이 ‘잘못된 종교관’은 제헌국회 개원식과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독경’(‘성경’은 모든 종교의 성스러운 경전이므로 기독교 경전을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고 목사의 축도(祝禱)를 하게 한 것부터 시작하여, 정부의 공휴일 지정에 이르러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냈다. 1949년 5월24일 국무회의 결의를 거쳐 ‘4대 국경일(삼일절·헌법공포일[제헌절]·독립기념일[광복절]·개천절)’을 정하면서 함께 결정한 공휴일에 크리스마스를 포함시켰는데, 이는 당시 인구의 5% 미만이었던 기독교인들에게 특혜를 주고 다수를 차지했던 불교·유교·천도교·대종교인의 권리를 무시·탄압한 조치였다.

불교계가 수십 년 간 애쓴 끝에 1975년 초에야 ‘부처님오신날’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니, 30년의 시간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크리스마스는 명칭을 성탄절(聖誕節)이라고 하고 달력 등에도 그렇게 표시되어 일반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분이 태어난 날’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면서 부처님 탄생하신 날은 ‘석가 탄신일’로 불러 명칭에서부터 차별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럼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떻게 했을까.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독립 직후부터 인구의 3%가 채 안 되는 불교인들을 배려하여 이슬람 축일과 함께 웨삭데이(Wesak Day; 음력 4월 15일)를 공휴일로 정하여 시행하고, 이웃 말레이시아는 영국 식민지배 시절부터 크리스마스와 웨삭데이 그리고 인구의 10%가 안 되는 인도계 주민들을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 65.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법보신문》 2018. 5. 8.

위해 힌두교 축일도 공휴일로 지정·시행하고 있다. 이 두 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기독탄신일만 공휴일로 정한 것은 현대사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해방 이후 오랜 동안 전기가 부족하여 제한 송전을 하던 시절에 전기를 풍부하게 쓰고, 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때에 라디오 방송 시간이 늘어난 데에다, 야간 통행금지까지 풀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해보자. 이렇게 해서 국민 정서를 기독교 친화적으로 바꾸었던 것이니, “크리스마스만 공휴일로 한 것이 불교 탄압이냐?”고 하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불교[와 유교‧천도교 등]에 대한 탄압이고 차별이었다.





 [필자: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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