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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정부 의식(儀式)의 종교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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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곡
댓글 0건 조회554회 작성일22-04-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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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가 ‧ 정부 의식(儀式)의 종교 차별



지난 2015년 인구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불교와 천도교는 그 교세가 비슷하다. 그런데 원불교는 ‘불교-개신교-가톨릭’에 이은 제4대 종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정부에서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천도교 쪽에서도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고 있어서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이 상태가 앞으로 오랜 동안 굳어질 것 같다.


그런데 원불교가 언제, 어떻게 해서 ‘4대 종교’의 틀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여러 차례 국장·국민장이 치러졌는데,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이르기까지는 종교 의식을 불교 · 개신교 · 가톨릭의 3대 종교가 집전하다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원불교가 참여하면서부터 앞의 3대 종교에 원불교를 더한 ‘4대 종교’의 틀이 굳어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말은 곧 국가와 정부 차원의 의례가 종교의 위상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이 북위 38도선 이남에 진주하여 3년 동안 군정을 실시할 때에는 거의 모든 의례가 자연스럽게 기독교[개신교]식으로 이루어졌다. 과거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또는 그 자손들이 미 군정청에 고문으로 참여한 데에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이 대거 미군정 고문이나 관료로 일하게 되고 군정청에 많은 군종 목사[미군]들이 있어서 주요 행사와 회의에 앞서 기도를 하는 등의 일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정의 고위 관리들이 “기독교 정신에 기초하여 건국을 추진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해도 이것이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미군정의 최고 책임자였던 하지 사령관은 군정청에 근무하는 미국인들에게 종종 “선교사의 사명감을 가지라”고 당부했으며, 군정 마무리 단계인 1948년 5월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할 때에도 “여러분의 모든 중한 의무 이행에 있어 하나님의 편달과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는 말로 마무리하여, 재임 기간 내내 시종일관 주요 행사 의식을 통해 ‘기독교 선교 정신’을 보여주었다.


한편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부터 휴전이 이루어진 1953년 7월까지 3년 동안 미군이 군사작전뿐 아니라 국정 전반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서 기독교 의식이 또 다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예를 들면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직후 지금은 사라진 옛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환도식(還都式)에서 국제연합군 사령관을 겸한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모든 참석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主)기도문을 함께 드리자”고 요구하여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맥아더는 본국 정부에서 ‘종교의 자유, 국가-종교 분리’라는 종교정책 목표를 하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점령군 사령관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던 일본인들에게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가져다주는 것”을 군정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공언했다. 


강인철, 《종속과 자율: 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 제1장 <종교정책과 헤게모니 전략>, 42~43쪽.


미군정은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 정부도 수립 순간부터 기독교 의식으로 시작하였다. 최고 연장자 자격으로 제헌의회 개회식 임시의장으로 지명된 이승만은 국회 첫 발언을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기도 요구로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 전체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목사이기도 한 이윤영 의원의 기도를 들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선림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1회 제1차 본회의록>


이와 같이 민족사 최초의 명실상부한 민의기구인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국회가 처음 열린 날 이승만이 네 차례, 이윤영 목사가 네 번, 국회의원 전원이 한 차례, 축사를 한 하지 사령관이 한 번 등 ‘하나님’을 열 번이나 공식 언급하였다.

이승만이 헌법에 명시한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개신교 선교사의 사명감에 사로잡혀 국정을 이끌고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제헌의회 개원식에 이어 7월24일 중앙청 앞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낭독한 취임사의 첫머리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냈다.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느님 은혜와 동포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는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 오늘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 하느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서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 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시민 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하도록 마음으로 맹서하기를 바랍니다. …”


 https://www.pa.go.kr/online_contents/inauguration/president01.jsp.

취임사 동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pa.go.kr/online_contents/inauguration/president01.jsp


이승만이 국가 의례와 의식에서 이와 같이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하자 개신교계에서도 적극 호응하여, 1952년 8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국가의식(儀式)을 기독교식으로 제정 혹은 변경하는 등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1945년에 총인구 중 개신교인구 비율이 0.5%, 1960년에는 5.8%였다. 그런데 1946년 미군정의 최고위직에 임명된 한국인 50명 중 35명(70.0%)이 개신교 신자였고, 이승만 정권에서 19개 부처의 장(長)을 역임한 135명 중 개신교 신자가 64명(47.4%)으로 이승만 정권의 역대 장관급 인사 중 개신교 신자가 반에 가까웠다. 정권 초에는 그래도 불교의 전진한 · 백성욱 · 김법린 등과 대종교의 이범석 · 이시영 · 안호상 등 여러 종교 배경을 지닌 정치인들이 참여했지만, 1954년 말경에는 대종교 ‧ 불교 ‧ 천주교 소속 정치인들이 정권 핵심부에서 모두 떠나고 4‧19혁명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개신교 독주체제’를 이어갔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절에 개신교인이 정부 고위직을 차지한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과 국가 의례 · 의식을 기독교식으로 한 것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그것이 한국 종교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개신교계에서는 ‘국군장병 위령제’의 ‘위령제’가 불교적이라며 ‘추도식’으로 명칭을 바꾸고, 3‧1절 기념행사 등에서 ‘분향焚香’도 실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국기배례가 우상숭배라며 이를 거부하는 결의를 하기도 하였다. 


강인철, 《종속과 자율: 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 제3장 <‘개신교 정권’의 점진적 형성(2): 특권 종교로의 도약>, 123~125쪽.





 [필자: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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