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보수·기독교계 중심의 ‘1948년 건국론, 이승만 건국 대통령’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건국절’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 중앙종회가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특히 중앙종회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라며 “이는 기독교를 한국 근대사의 중심에 두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때문에 중앙종회는 “이번 사안은 그 어떤 종교편향보다 심각한 문제”라며 “조계종뿐 아니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 불교왜곡 대응 특별위원회(위원장 선광 스님, 종교편향 특위)는 8월23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9차 회의를 열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재점화된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불교계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스님들은 “1948년 건국절 주장은 반만년의 한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시기에 따라 각 왕조의 흥망성쇠는 있었지만, 민족의 뿌리는 단절되지 않고 정체성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갑자기 과거 역사를 모두 부정하고 느닷없이 건국절을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스님들은 이어 “갑작스럽게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의 배후에는 보수 기독교계가 있다”며 “한국 근현대 과정에서 기독교계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기독교 중심의 역사관을 심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한국근현대사에서 불교사는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원 스님은 “반만년의 한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임시정부를 수립해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이런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며 “같은 논리라면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조계종의 역사는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이 출범한 이후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정 스님은 “1948년 건국절 주장은 일제강점기 용성, 만해 스님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불교 항일운동사까지도 부정하는 것”이라며 “보수·기독교계가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에 앞장섰던 불교 항일운동사를 지우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종교편향 특위 스님들은 또 보수·기독교계가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부각하고, 윤석열 정부가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내놨다.
선광 스님은 “이승만은 독재와 부패로 점철되다 4·19혁명에 의해 (대통령에서) 쫓겨난 인물”이라며 “이런 사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추앙하고 기념관까지 지어줄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제정 스님은 “이승만은 재임 기간 기독교 교세 확장을 위해 불교 내부갈등을 조장하고 탄압했던 인물”이라며 “비구·대처간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기보다 싸움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고, 농지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불교재산을 빼앗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승만의 불교탄압은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라고 했다. 때문에 스님들은 “보수 기독교의 주장을 옹호하며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적극 나서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지우 스님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제기된 건국절 논란은 문재인 정부가 명확히 정리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사안이다. 현 정부 들어 왜 다시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는지 의도가 궁금하다”며 “굳이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며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설해 스님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이 성경에서 기초했다’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번 논란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종교편향 특위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불교계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단순히 성명발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해 불교계의 대응 논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종교편향 특위는 불교학자 및 역사학자들을 초청해 건국절 논란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한편 종교편향 특위는 이날 회의에서 서울시의 ‘광화문 역사물길 연표 논란’과 관련해 총무원 사회부로부터 경과보고를 받고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또 가톨릭 성지화로 논란이 되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에 대한 대응방안도 차기 회의에서 이어가기로 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