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연설 등 세차례나 똑같은 발언 ‘논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예수 말씀서 나온 것”
헌법학자 “헌법은 특정종교에 기반할 수 없다”
종교편향특위 진의 파악…시민수석 면담 요청
“종교갈등 너머 사회분열 유발…빨리 해명해야”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특정종교 성역화 논란 이후 잠잠하던 공공기관의 종교편향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번 논란의 장본인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4월27일 미국 순방 중 의회 연설의 내용이 문제가 됐다.
국민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자유와 연대의 가치는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에 의해 우리에게 널리 소개됐다. 그 후 우리 국민의 독립과 건국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교분리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특정종교가 우리나라 헌법의 기초가 됐다는 발언을 다른 나라에서 한 것이라 파장이 적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이전부터 있었다. 미국 순방 직전인 4월9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제가 늘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헌법정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질서가 다 성경 말씀에 담겨있고 거기서 나온다고 했다”며 “진실에 반하고 진리에 반하는 거짓과 부패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없도록 헌법정신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12월25일 서울 영암교회에 가서는 “법학을 공부해보니 헌법체계나 모든 질서, 제도가 다 성경 말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과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2월6일 불교계가 개최한 ‘불기 2567년 대한민국불교도 신년대법회’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축사에서는 비슷한 언급조차 하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이자 헌법학 전공자인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거기에는 무종교의 자유도 포함돼 있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도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만 봐도 헌법은 특정종교에 기반할 수 없다”며 “특정종교를 우위에 둔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외교적 수사라 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종교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윤 대통령의 ‘대한민국 헌법은 기독교가 기초’라는 발언이 6개월도 채 안된 사이에 세 차례나 반복된다는 것은 종교행사에 참석해 덕담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신념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같은 신념이 국정운영에까지 미칠 경우, 공공기관의 종교편향 및 왜곡 사례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해 보인다.
이에 따라 불교계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 선광스님)는 최근 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의 발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종교편향특위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공문을 보내 시민사회수석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종교편향특위 위원장 선광스님은 “대통령의 말씀이 개인적인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면 부적절한 발언임에 틀림없다”며 “우리나라 종교 갈등뿐 아니라 사회의 분열까지 획책할 수 있단 점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빠른 시일 내에 분명한 해명과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