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 중흥조 허응당 보우 대사를 나라 어지럽힌 요승인 듯 ‘처벌’로 기록해 논란이 일었던 서울 광화문광장의 역사물길 연표석이 ‘보우(허응대사) 입적’으로 바로 잡힌다. 본지 보도 1년 만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종교평화위원회와 협의한 내용을 반영해 올해 안에 역사물길 연표석을 재정비할 것이라고 한다. 의미 있다. 종교 편향과 차별을 넘어선 ‘불교‧가톨릭’ 간의 종교갈등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줄이거나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종교갈등 유형과 불교적 해소방안’을 연구한 성우 스님에 따르면 종교 편향과 차별을 엄밀하게 구분하면 차이가 있다. 종교‧사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종교편향은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이다. 자신의 종교만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도‧시립 합창단 지휘자의 독단으로 선교에 쓰이는 곡을 중심으로 선별해 공연하는 것이 이에 해당 한다.
종교차별은 ‘편향적 사고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말한다.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차별적 행위를 행한 것’을 이른다. 교육청 소속의 중학교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기도를 강요하는 건 종교차별이다. 특히 불법적 행위까지 드러난 경우엔 명백한 종교차별이다.
불교계에서는 공직자가 종교를 이유로 공직 임용을 제한하거나 신앙고백을 강제하는 경우, 선교를 목적으로 노골적인 종교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 내거나, 지위를 이용해 종교를 전하는 행위 등을 ‘종교 편향’이라 규정하고 있다. 종교 편향성은 물론 차별성도 포함한 광의적 의미로 쓰고 있다. 그러나 종교차별임이 명확하다고 확인되면 결단코 좌시하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해 왔다.
‘광화문 역사물길’ 문제가 불거지자 학자, 신행 단체,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한 조계종 등이 “역사 왜곡이자 종교편향”이라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전의 종교편향 사건 때와는 다른 강력하고도 체계적인 대응이 지속됐다. 왜인가? 종교차별이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음을 뼈저리도록 너무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주시는 남한산성과 천진암을 잇는 ‘가톨릭 성지 순례길’을 추진했다. 남한산성에 피 흘린 사람이 가톨릭 신자만은 아니었다. 그 성을 쌓고 지키다 희생된 사람은 스님들이었다. 서울시가 추진한 ‘광화문‧서소문 가톨릭 성지화’ ‘서울 일대 가톨릭 성지 명명 간판 설치’ ‘광화문 역사물길 연표석 왜곡’ 등은 특정 종교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사업들이다. “서울시를 바티칸으로 조성하려는가”라는 비판이 거세게 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톨릭에만 도움 될 사업에 혈세를 투입하고, 기존의 한국문화와 역사까지도 비틀고 묻어 버리려는 이것은 종교차별이다. 그러기에 지자체가 종교갈등을 조장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금도 지우지 않고 있다. 경기도 광주는 공식적으로 불교계에 사과하고 원래의 ‘천년고도 사업’으로 돌아갔다. 서울시도 “바로 잡겠다”라고 약속했다. 그 결과물로 처음 내보인 것이 광화문광장 역사물길 연표석 정비다.
서울시가 풀어야 문제는 아직 산적해 있다. 광화문광장 시복터와 바닥돌, 서소문 역사공원 가톨릭 성지화, 서울 유적·관광지에 세워진 가톨릭 성지 간판 등도 해결해야 한다. 서울시가 자처한 일 아닌가. 이 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교갈등’은 언제든 표면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 종교학자들이 진단했듯 ‘갈등은 폭력을 부를 수 있고, 그 폭력은 사회 전체를 고통스럽게 한다.’
종교갈등은 무지로부터 비롯된다. 그러기에 깨어나면 종교갈등은 사라진다. 가톨릭은 서울시의 잘못된 행정을 묵인하듯 침묵만 지키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가톨릭 스스로 지혜를 발현해 화합‧상생의 길을 스스로 모색 해야 한다. 대화만으로 갈등과 분쟁을 종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불교계는 수많은 종교편향 사건을 통해 경험했다. 가톨릭과 서울시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을 때까지 불교계의 파사현정 불사는 계속돼야 한다.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