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삼대화상으로 존숭돼 온 지공·나옹·무학 스님의 수행지이자 그 명칭도 삼대화상으로부터 유래된 서울 관악구 ‘삼성산(三聖山)’이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해 가톨릭 신부(엥베르·모방·샤스탕)의 유해 성지로 둔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사의 기본 토대를 제공해야할 공공기관이 불교사를 왜곡하고 가톨릭 사관을 무분별하게 수용·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계 공분도 커질 전망이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해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국내 3대 공립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인정받는 만큼 한중연의 백과사전은 네이버·다음·구글 등 주요 포털사이트 화면에서도 상단 노출된다.
그러나 ‘한민족이 이룩한 문화유산과 업적을 정리 집대성'한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하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삼성산을 천주교 성지로 규정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의 유해가 한때 삼성산에 매장됐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산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일성록’ ‘동국여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서하집’ ‘회재집’ ‘동주집’ ‘송암집’ ‘월곡집’ ‘동사강목’ ‘명재유고‘ 등 고문헌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839년 기해사옥 당시 처형 당한 프랑스 선교사 3명의 유해가 이동한 경로에 대한 설명으로 삼성산 역사를 소개했다. 포도청과 의금부에 끌려가 처형당한 선교사 유해가 지금의 서강대 뒷산 노고산에서 과천 서쪽 봉우리 삼성산 북쪽 끝자락 박씨 선산에 안장됐다가, 1901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현재 명동성당 지하 묘지에 이장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끝부분에는 “삼성산이라는 명칭은 고려 말 명승 나옹, 무학, 지공이 수도한 데서 유래되었으나 이곳에 세 선교사의 유해가 안장되고 그들이 시성되어 성인품에 오름에 따라 천주교회 안에서는 삼성산을 세 명의 성인 유해가 안장된 성지로 설명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불교의 삼대화상인 지공·나옹·무학 스님의 역사성보다 가톨릭 신부의 유해성지로 삼성산이 인식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중연의 이러한 설명과는 달리 삼성산은 명백한 불교성지다. 명칭도 삼대화상에서 유래됐다는 역사적 기록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영조 때 편찬된 전국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무학, 나옹, 지공 세 큰 스님이 각각 절 지어 살았기에 삼성산이라고 이름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삼막사 사적비(1707)에도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처음 터를 잡고 띠집을 지어 수도 정진하던 것이 삼성산 유래의 시초이며…(중략)…고려 말 지공·나옹 등의 선사들이 삼성산 머물며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고 새겨져 있다. 유서 깊은 불교성지인 만큼 고찰도 많다. 통일신라 창건한 삼막사를 비롯해 조선 시대 비보사찰로 중시됐던 호압사, 관음사와 반월암, 상불암, 안양사, 망월암 등이 삼성산에 있다. 그러나 한중연의 왜곡된 안내로 인해 삼성산 내 고찰들이 졸지에 가톨릭 성지로 전락될 위기에 놓인 상태다.
가톨릭 사관을 가진 인물을 단독 집필자로 선정한 것도 한중연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삼성산’ 관련 내용을 집필한 서종태 전주대 교수는 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을 거쳐 해미국제성지 신앙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순교자 연구를 통해 서소문공원, 광희문 등 서울 시내 유적지를 가톨릭 성지로 주장하는 논문 등을 다수 집필하기도 했다.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의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서 교수는 삼성산 기록 과정에서도 고문헌의 역사적 기록은 언급하지 않은 채 1980년대 출판한 가톨릭계 서적 2권(한국천주교회사, 순교자의 얼을 찾아서)과 가톨릭 성당 홈페이지(www.ssss.or.kr)만 참고했다.
광화문광장, 서소문역사공원, 절두산, 해미읍성 등 대한민국 전역의 역사 유적이 가톨릭 성지로 둔갑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백과사전에서조차 가톨릭 중심의 왜곡된 역사기술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묵인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여말선초 불교사를 전공한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인 삼대화상 수행 장소를 가톨릭 신부의 유해성지로 바꿔치기한 역사 왜곡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지공·나옹·무학 스님은 백성의 평안과 불교 중흥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중요한 인물이다. 지공, 나옹 스님은 여말선초 당대부터 부처의 화신 혹은 생불로 불렸고, 무학 스님은 이성계의 왕사이자 나옹 스님의 적통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문도가 조선 전기 불교계를 주도했고 불교의식에 있어서 최고 증명법사로 신앙됐으며 삼대화상의 진영도 회암사를 비롯해 전국에 봉안돼 추념됐다. 오늘날까지 스님, 불자들의 존숭받고 있는 삼대화상의 수행터를 신부 유해가 거쳐간 경로라는 이유로 가톨릭 성지로 정의하는 것은 역사의 퇴행을 넘어선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특별위원장 선광 스님은 “경기 광주 천진암처럼 오랜 세월 전승되던 불교의 역사를 지우려는 주도면밀하고 지능적인 역사 왜곡에 탄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는 곳이 편향된 정보로 대한민국의 가톨릭 예속화를 돕고, 민족문화 정신을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다. 삼대화상 수행 터마저 세 신부의 순교지로 ‘역사 훔치기’하는 상황을 주도하고 방관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개 사과와 조속한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