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군 대장급 인사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의 종교 편향적 인사가 불교계의 큰 파장을 주고 있다. 합동참모의장, 육·해·공 참모총장 등 군 장성 인사 7명 중에서 불자가 한 명도 없던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본지 보도를 통해 국무총리와 19개 부처 장관, 심지어 차관 중에서도 사실상 불자가 없다는 내용이 밝혀지면서 연일 불교계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19개 부처 장관 가운데 개신교는 5명, 천주교는 3명, 무교로 밝힌 이는 5명이었으며 비공개 및 응답이 없던 이는 7명이었다. 차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9개 부처 26명의 차관 중 개신교는 가장 많은 9명, 천주교는 2명, 무교로 밝힌 이는 6명이었고, 나머지는 응답이 없었다. (관련 보도 이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본지에 본인은 ‘불자’라고 밝혀왔다. 11월22일 현재)
이 와중에 대통령 국정 운영의 핵심 참모인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중에서도 불자는 전무해질 상황이다. 교체 예정인 몇몇 수석비서관 후임자 또한 개신교 또는 뉴라이트 인사들이 거론돼 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종교 비율과 현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 종교 현황을 비교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총 23차례에 거쳐 대한민국 종교 인구 비율을 조사한 결과, 개신교는 20%, 불교는 17%, 천주교는 11%를 차지했다. 국가 기본통계로서 가장 마지막으로 종교실태를 파악한 ‘2015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개신교 19.7%, 불교 15.5%, 천주교 7.9% 순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무총리 및 장·차관 등 46명의 종교 현황을 살펴보면 천주교는 10%(5명)를 차지하며 비슷한 추이를 보였지만, 개신교는 30.4%(14명)로 국민 종교 비율보다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불교만 4%(2명)으로 국민 종교 비율과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고위 공직자 인사에 있어 의도적으로 불자를 홀대하고 있다는 불교계 반발이 터져 나오는 배경이다. “대한민국의 종교 인구 분포로 봤을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형적 인사구조”라며 정부를 규탄한 중앙종회 초선 의원 스님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당 논란을 옹호하는 기독교계 언론 등에서는 “고위 공직자 인사에 왜 ‘종교’를 부각하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다종교·다문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실현해야 할 가치인 ‘국민화합’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규탁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다종교·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여러 국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이 가운데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는 국정 운영을 펼친다면, 국민화합은 요원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구나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한 채 특정 종교로 편향될 경우 극심한 국민 분열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종단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과거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국기기관과 공직자들의 종교 편향은 일일이 언급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며, 올해만 하더라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찬송가 논란 등 종교 편향은 끊이지 않았다.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는 “그간 지속된 종교 편향의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인욕(忍辱)’을 불자의 미덕으로 삼아 소극적으로 일관했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강력하고 엄중한 불교계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해야 할 것”이라며 “스님들 뿐만 아니라 중앙신도회를 중심으로 지역 신도회, 불교단체 등 재가 불자들도 한마음으로 역량을 결집해 파사현정의 자세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