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불교차별을 이어간 김영삼 정권
1993년 2월 말 출범한 김영삼(YS) 정권은, ‘3당 합당’의 결과로 탄생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30여년 만에 맞은 문민정부였다. 그렇기에 선거에서 YS에게 표를 찍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 중에도 새 정권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았다. 임기 말 IMF구제금융 사태를 맞이하면서 YS정권의 모든 공적이 묻혀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 ‧ 금융실명제와 쓰레기 종량제 실시 등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긴 점까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만은 공과(功過)를 함께 이야기하기 어렵다. 잘못[過]이 공적[功]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숱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며 임기 내내 불교계와 긴장 관계를 이어간 점은 매우 안타깝다. ‘육군 제17사단 전차대대 훼불 사건’으로 정권 출범과 함께 불교계의 ‘종교 차별’ 비판을 받게 되었으면 이를 시정하는 쪽으로 인사와 정책 집행을 이어가야 했지만, 오히려 불교를 차별하는 정반대의 길을 가면서 갈등을 더 깊게 하고 정권 안정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화합을 해치고 말았던 것이다.
어쨌든 스스로 ‘문민정부’라 내세우며 출범한 YS정권은 첫 내각 인선에서부터 ‘지나친 종교차별이 계속될 것 같다’는 우려를 낳게 하였다. 장관급 인사 중 기독교인은 7명이었던 데 반하여, 불교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항간에는 “충현교회 인맥이 정부를 장악했다”는 설이 넓게 퍼졌는데, 이를 부정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이 흐름은 YS의 임기 5년 동안 그대로 이어져 YS정권에서 장관 ‧ 차관을 지낸 175명 중 종교가 밝혀지지 않은 2명을 제외한 173명의 종교 분포 조사 결과 ‘개신교 76명(43.9%)-가톨릭 27명(15.6%)-불교 23명(13.3%)’ 등으로 확인된다. (그 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에는 ‘개신교 56.3%-가톨릭 25%-불교 6.3%’로 더욱 악화된다.) 물론 YS의 측근으로 통하던 대학생불교연합회 출신 박세일과 이각범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임명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의 종교 정책집행과 인사에서 종교차별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럴 의지가 없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YS정권의 종교차별을 막는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 후반기에 들어선 1996년 1월21일 대통령 부부가 국방부 청사 경내에 있는 국군중앙교회에서 이 교회 장로인 권영해 안기부장 ‧ 이양호 국방부장관 등과 예배를 보는 장면이 KBS 저녁뉴스에 생생한 화면으로 보도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헌병이 국방부 입구에서 불교인들의 법당(원광사) 출입을 막고 개신교 장병들의 예배 참석을 돕기 위해 당직 근무를 불교 신도 장병 등과 바꾸어준 일이 밝혀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군내 종교의 형평성을 들어 규탄성명서가 나오는 등 불교계의 항의가 거세지자 1월30일 국방부장관(이양호)이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해 “대통령의 국방부 중앙교회 예배에 따른 경호와 의전상의 문제로 군 법당 법회에 참석하는 불자들에게 불편을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군종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형평을 잃는 일이 없도록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지만 불교계의 어느 누구도 흔쾌히 그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약속을 믿지 않을 정도로 YS정권은 신뢰를 잃고 있었다. 당시 총무원장(월주)도 “대통령의 특정 종교행사 참여를 자제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했지만, 그 말을 받아들일 사람이었다면 5년 임기 내내 불교를 차별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 발생 초 국방부에서는 “광신적 개신교도가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라는 식으로 덮고 가려고 했지만,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스님과 재가 불자들이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국방부가 대책회의를 열고 ‘불교계 인심 수습 방안을 찾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과 권영해 국방장관, 이필섭 합참의장 등 군 최고위 지휘라인이 모두 개신교 장로여서 자칫하면 ‘불교계와의 정면대치’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국방부에서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공식사과하고, 법당 폐쇄와 불상 훼손을 지시한 전차 대대장을 보직 해임한 뒤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
그 뒤 군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전차 대대장 조 중령이 17사단에 부임한 1992년 4월부터 심각한 불교 탄압 행위가 자행됐지만, 사건이 터질 때까지 상부에서 그 사실을 덮어두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대 불교신도회 회장 주임상사가 부처님오신날 경축 연등을 부대에 설치하자 개신교도 부하 장병들에게 “일요일에 목사님이 예배하러 오다 보면 불쾌할 테니 연등을 끌어내려 태워버리라”고 지시했을 뿐 아니라 연등 철거 이후 이에 항의하는 불교 신자 장병 9명을 “지휘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모두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버렸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자대에 배치받은 지 100일 미만인 신병들을 골라 교회에 보내는가 하면 기독탄신일에는 대대원들을 상대로 ‘찬송가 경연대회’와 ‘신앙경연대회’를 열어 특별 포상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사단장에게도 보고되었지만 거의 모두 개신교 신도였던 사단 참모들의 비호로 사단장 서모 소장이 조 대대장에게 ‘문책 없이 주의’를 주는 선에 그쳤던 것이다. 육군 제17사단 전차대대에서 일어난 이 훼불사건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국방부는 뒤늦게 사건 진화에 나서서, 당초 방침을 바꾸어 조 대대장을 구속 수감하고 불교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벌이는가 하면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지휘서신을 전군에 하달했다.
민주화 이전에는 이와 같은 사건이 드러나 정부의 사과가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폐쇄 사회에 가까운 군 내부의 종교 차별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랬을 뿐 훨씬 구조적인 차별이 ‘차별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수십 년 동안 이어져왔던 것이다. 실제로 YS정권의 초대 국방장관이었던 권영해가 육군 제6사단장이던 1980년대 초, 사단에 정식 법당이 없어서 철원 도피안사 안에 천막을 치고 임시 법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당시 정모 군 법사가 애써서 부지를 물색하고 사단법당 청원사 신축 불사를 추진하여 기공식을 하게 되었지만 당일 법문과 축하를 위해 온 스님과 신도들을 사단장의 지시를 받은 헌병이 정문에서 막아 되돌아가는 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후에도 땅굴 견학을 온 불자들이 법당 신축 불사를 후원·동참하려고 찾아왔지만 사단장 지시로 출입이 통제되어 법당 신축 현장을 돌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말았다. 사단장 시절에도 이랬던 권영해 씨가 막강 권력을 가진 국방장관이 되어 어떻게 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례였다.
이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형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이어지지만, 군 내부의 종교 차별 문제를 거론하는 불교계, 심지어 군종 교구 관계자들조차도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앞에서 말한 정모 법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사단 군종부에 근무하는 ‘목사 5명, 상사 1명, 정식 군종병 24명’이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법당에 파견된 군종병 1명도 정식으로 파견된 인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연대 · 여단 · 훈련단 · 사단 · 군단 · 사령부 · 육해공 3군 본부와 교육부대 · 지원부대 · 특수부대 등 군종부가 있는 곳마다 시설 관리와 행정 업무를 보는 부(副)사관은 거의 모두 개신교 집사이고 이들이 전역할 때까지 군종부를 장악하고 있어서 군 법사들도 군종병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아직까지 별로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종교구 안에서도 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여 대책을 세우거나 군 당국에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안 보인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특정 종교를 내세워 다른 종교를 차별하는 대통령 · 국방장관 · 사령관 · 사단장과 연대장 · 대대장 등이 재임할 때에 일어나는 차별과 탄압 사건은 이제 점차 줄어들어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군목사와 개신교인 준사관들이 각급 부대 군종부를 100%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군 내부의 종교차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결코 놓치면 안 된다. 특히 다른 사단으로 자주 보직이 바뀌는 장교들과 달리 한 사단에서 전역 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 준사관들이 장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주목하고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 관철시키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려움이 이어질 것이다.
[필자: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