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 ‘꽃’ 중에서
이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이 있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되 차별과 독립성을 인정받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콜사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이름값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이름에는 그만큼 자신만의 독자성과 함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인격권’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정해지고 불려지고 나면 아무 때나 고치나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1930년대에 동양무용의 절제된 동작의 아름다움으로 파리 예술인들을 감동시켰던 일본명 ‘쇼키 사이(Shoki Sai)’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시상대에서 고개를 떨구었던 ‘기테이 손(Kitei Son)’이 사실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의 자랑스러운 젊은이 ‘최승희(崔承喜, 1911~1969)’ ‘손기정(孫基禎, 1912~2002)‘이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래 이름으로 불리기를 소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았고, 자신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웠다.
불리는 이름의 가치와 중요성을 극명하게 알려준 주는 가장 참담했던 사례는 바로 1세기 전쯤의 ‘창씨개명’을 떠올리면 된다. 1939년 11월 우리 민족 고유의 성명(姓名)제도를 폐지하고, 일본식의 씨명(氏名)제도를 채택하도록 강제한 조선총독부 칙령은 1940년 2월11일 시행되어 8월10일까지 새로운 성씨를 결정하여 제출하도록 강제한 비인도적 몰상식한 조치였다.
광복이라는 고마운 시절인연으로 한 번도 불려보지는 못했지만, 옛 고향 나의 호적 원부에 빨간색 잉크 두 줄로 지워진 ‘松本’의 의미를 면사무소 호적계 아저씨가 “해방이 늦게 되었으면 ‘마쓰모도’로 불렸을 거란다”고 알려줬던 끔찍한 개인적 기억도 새롭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름 석 자와 가문의 명예와 ‘이름값’을 중시했던 선조들의 창씨개명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경북 안동 예안의 이현구(李賢求), 전남 곡성의 유건영(柳健永), 전북 고창의 설진영(薛鎭永) 등 많은 문중의 어른들이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단식 또는 자결했으며, 그밖에 단기간의 징역형이나 구류처분을 받은 예는 일일이 셀 수가 없을 만큼 많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창씨개명거부운동 장 중에서 발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이른바 ‘분쟁지역’을 들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동해 한가운데 있는 섬이 ‘독도’냐, ‘다케시마(竹島)’냐 하는 문제는 한일 간의 치열한 대척점을 지나 세계적 문제로 번졌다고 본다. 광복 1세기가 지나도 해결은커녕 양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립각이 날카로워지는 역사충돌의 현장이다. 그밖에 중국과 일본 간의 ‘센가쿠열도(尖閣諸島)’ / ‘다위다오(釣漁島)’, 일본과 러시아 간의 ‘쿠릴열도(Kuril Islands)’ / ‘치시마열도(千島列島)’에서 보듯, 불리는 이름에 따라서 나라와 역사가 달라지고, 국기의 색깔이 달라지고, 사용하는 언어체계와 사고의 틀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그만큼 섬 하나, 길 이름 하나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 출신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1967년)는 재미 작가 김은국(金恩國, 1932.3.13.~2009.6.23.) 교수 같은 이는 혼돈과 격동의 시대를 사는 동안 ‘이와모도(岩本)’라는 일본식 이름과 ‘리차드 킴(Richard Kim)이라는 미국식 이름으로 불리는 일생을 살았다.
그런가 하면,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는 조선청년들을 위한 장행회에서 “제군들이 출진을 함으로써 우리 교회를 통하야 국가에 충성을 한층 더하게 됨은 국가(여기서는 일본)에 대한 우리 교회의 크나큰 영광이다”라며 ‘진충보국盡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자)’는 격려사를 들려준 경성의 주교 오카모도 가네하루(岡本鐵治)와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장 미나미(南憲) 이사장의 광복 후 불린 이름이 노기남과 남상철로 바뀌어 승승장구했으나, 끝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오욕의 역사를 보더라도, 불리는 이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남상철은 세상이 다 아는 불교의 천진암터를 ‘한국천주교발상지’로 둔갑시킬 당위성 이론을 가톨릭 매체에 기고하는 등 실무를 꾸리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름 하나가 갖는 독창성과 가치의 중차대함이 이러함에도 남도의 섬 하나 전체를 ‘1004의 섬’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관광 길목의 휴게소마다 기독교 성인 12제자의 이름을 붙여가며 ‘크리스챤 왕국’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란 듯 애써 이름 붙였던 ‘천사 대교’를 ‘윤석열 대교’로 고쳐 부르겠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서울 광화문 광장 한복판의 순례길 이름 안내판에 ‘교황청 승인’을 받았다고 생뚱맞은 자랑을 적어 놓는 한국천주교의 속내는 또 무엇일까. 그것도 공공지역에 공적 예산을 들여서 말이다.
이를 지적한 블로거의 글을 보고 “까짓 길 이름 하나, 섬 몇 군데 이름 가지고 뭘 그러느냐, 그것도 악화하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관광산업을 살려 보려는 노력 좀 평가해줄 수는 없는가!”라는 요지의 SNS 항의도 보내면서 말이다.
이기룡 포교사·언론인정말로 그렇게 순수한 애향심만으로 출발했을까? 아닐 것이다. 불자로서 의심하는 것은, 저들이 밖으로 내세운 대외적 명분 뒤에는 이른바 ‘일단 점을 하나 찍고, 선을 긋고, 면적으로 확장해서 거점 성지를 만든다’는 천주교와 기독교계의 이른바 ‘성시화운동’ 전략의 고스트 이미지의 그림자가 얼비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참조> 천사섬 주도 신안군수, 이번엔 ‘윤석열 대교’ 추진 논란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2351
<참조>누구의 ‘열두 제자’? 왜 ‘1004섬’!-신안군수의 뇌회한 ‘암호코드’ 읽는 법(‘22.11.18)
https://blog.naver.com/gainnal0171/222931848860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