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성 홍주읍성과 서산 해미읍성에 다녀왔다. 일제강점기와 도시 현대화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그 원형이 어느 정도 복원되어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시설들이 있었다. 여러 안내판에 천주교 성지라는 글귀와 십자가 표시들이었다. 19세기 읍성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읍성이 천주교만의 성지는 아니지 않은가? 읍성은 수백 년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생활 공간이 아니던가?
읍성은 여말선초,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홍건적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남해안 지역과 북방 경계지부터 축조되기 시작해, 다수의 지방행정구역에 축조됐다. 조선은 개국 후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수령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에는 객사를 비롯해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 향교, 사직단, 여단, 성황단 등의 주요 읍치 시설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읍성이 있는 곳은 읍성 안에 그 시설이 들어섰고, 읍성이 없는 곳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관아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의하면, 읍치 시설이 있는 지방이 224곳이고, 그 가운데 125곳에 읍성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1910년 일제에 의해 읍성철거령이 내려진 이후 전국의 읍치 시설물과 성곽들이 의도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과정에 또 파괴됐으며, 1970년대 이후 도시 현대화의 명목으로 낡은 시설물들이 무분별하게 철거되면서 읍성과 읍치 시설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다행히 1900년대 이후 국가 경제 발전과 더불어 옛 문화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지방 정부에 의해 전국에 남아 있던 읍성들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주읍성과 해미읍성의 경우는 읍성에 본래 있던 시설물을 복원하기보다 특정 종교의 성지화가 진행됐던 것 같다. 읍성을 종교 편향적으로 관광 자원화를 할 경우 우려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홍주읍성과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담당했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천주교 성지화’는 이들의 원래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특정 종교의 서사가 강조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성곽 본래의 의미와 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
둘째는 문화유산 보존 문제이다. 성지화 과정에서 성곽 주변에 종교적 기념물이나 조형물이 추가되거나 공간이 재구성되면 원형 복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성곽과 읍치 시설은 원형 복원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개입이 문화유산의 고유한 원형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종교적 편향성 문제이다. 해당 장소가 특정 종교의 성지로 인식되게 해, 다른 종교인이나 일반 대중에게 배타적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종교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해당 장소를 방문하거나 활용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관광 자원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홍주읍성과 해미읍성의 천주교 성지화는 지역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성곽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관광객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읍성의 고유한 원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불교신문 3841호/2024년10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