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 4월27일 폐지 결정 발표
‘화합’ 위한 자문위, ‘사전검열’ 낙인 논란

“합당한 이유·절차 없는 폐지라니
앞으로 종교편향 공연 누가 막나”

대구시는 최근 종교차별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안정장치 역할을 해온 '종교화합자문위원회' 폐지를 결정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21년 종교편향 공연으로 물의를 빚은 대구시립합창단 공연 모습. 사진=대구시립합창단 유튜브 캡쳐.대구시는 최근 종교차별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안정장치 역할을 해온 '종교화합자문위원회' 폐지를 결정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21년 종교편향 공연으로 물의를 빚은 대구시립합창단 공연 모습. 사진=대구시립합창단 유튜브 캡쳐.

대구시(시장 홍준표)가 특정종교 편향성이 짙은 합창곡에 대해 부결 결정을 내린 종교화합자문위원회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일부 지역 여론에 떠밀려 성급하게 해산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구시는 지역 예술계와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종합 검토해 폐지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본지 취재 결과 위원회 해산에 따른 의견 수렴 과정과 폐지 배경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아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대구시는 앞으로 시립예술단의 종교편향을 막을 별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위원회를 대신해 어떻게 책임 있는 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논란의 시작은 대구시립교향악단·합창단이 찬송가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겠다고 나서면서 비롯됐다. 종교화합자문위는 4월 초 조례에 따라 곡 선정을 심의했으며, 해당곡에 ‘창조주에게 무릎을 꿇고 하나가 되자’ 등의 구절이 특정 종교에 편향된다고 판단해 부결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지역 예술계와 개신교계, 지역 언론사 등에서 부결 결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다. 유산나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 주무관은 4월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위원회 조례 개정을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홍준표 시장이 4월27일 위원회를 아예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홍 시장은 종교화합과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를 두고 ‘검열기구’라고 낙인찍는 등 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아 불교계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구시 측에 갑작스러운 폐지 결정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유산나 주무관에게 구체적인 의견수렴 과정과 절차를 재차 물었지만 “각계각층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폐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만 답했다.

종교화합자문위원회는 국내 유일한 종교편향 공연 논의 창구이자 종교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불교계 10여 년 노력의 결실이다. 불교계는 2013년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찬송가로 가득 채운 선교공연을 선보이자 즉각 대구시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자 서양음악 전문가들과 대책위원회를 꾸려 공연내용을 분석하고 대구시청을 찾아가는 등 적극 대응했다. 이에 대구시는 불교계에 재차 사과하며 2014년 종교화합자문위원회 임의기구를 설치, 2021년 조례 개정을 통해 시립예술단 설치 조례 및 운영규칙에 자문위원회 관련 내용을 명문화하겠다고 약속하며 공식 기구로 출범시켰다.

이후 종교화합자문위는 조례에 따라 예술단 정기공연 종교 중립성을 논의하는 등 종교편향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다. 또 종교계와 예술계 간 협력하는 방안도 논의하며 종교간 갈등을 막고 화합하기 위한 기구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불교계는 대구시의 성급한 폐지 결정에 깊이 우려하는 분위기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장 도심스님은 “종교화합자문위원회는 검열기구로 기정사실화되며 설립 정신과 본질이 얼룩져버렸다”며 “무엇보다 위원회가 마련되고 1년이 막 지난 시점임에도 어렵사리 마련된 제도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이제 종교편향 공연이 일어나면 그 역할을 누가 대신하겠는가”라고 했다.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스님도 성급한 폐지 결정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범종스님은 “종교화합자문위원회가 만들어진 과정에는 종교간 갈등을 없애고 화합하자는 의도가 담겨있다”며 “위원회가 만들어진 정신을 잘 계승하고 보완해서 운영하면 될 텐데 폐지 결정은 성급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편 대구시는 종교화합자문위 폐지 이후 특정 종교음악으로 인한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종교편향 방지대책을 별도로 수립해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발표에 따르면 종교편향 공연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징계위원회 의결을 거쳐 예술감독을 해촉하고, 문화예술회관장과 콘서트하우스 관장도 직무유기로 징계 조치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관장, 예술감독 채용시 채용심사위원회에 종교계 추천인사를 포함시키며, 채용시 종교편향방지 서약서와 종교편향 방지 직무계획서 제출 등의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