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의 ‘국토 성지화 욕망’은 서울 서소문역사공원에서 명백해진다. 연면적 4만6000여㎡의 94%가 국유지에, 국비·시비·구비 596억원이 투입된 지상1층~지하4층 규모의 서소문역사공원은 이름만 “역사공원”일 뿐 ‘가톨릭 성당 겸 순교자기념관’과 다름 없다.
서울대교구는 2019년 6월1일 개관을 앞두고 공원 지하3층 콘솔레이션홀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50여명의 사제와 1000여명의 가톨릭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성·봉헌 미사’를 거행했다. 공원의 점유권이 사실상 서울시민에서 천주교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서소문역사공원에 조성된 문화집회시설 관리 운영 역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맡고 있다. 국가 소유 토지와 국민 혈세가 가톨릭의 세력확장으로 쓰여진 셈이다.
조선시대 소의문이라고도 불렸던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었던 간문(間門)이다. 아현에서 서소문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서소문 밖 네거리는 17세기 후반~18세기 한양 최대 시장이었던 칠패시장이 있던 곳으로 지주층의 수탈로 피폐된 농촌을 탈출한 유민들이 시장을 열던 빈민층 경제의 중심지였다. 또 백성들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국사범을 효시(梟示)하는 조선시대 처형 장소로 쓰였다. 이곳에서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과 개혁사상을 외친 허균 등이 목숨을 잃었고 홍경래의 난 가담자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주도자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이 참수됐다.
그럼에도 서울대교구는 “서소문 밖 네거리가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124위 복자 가운데 27위가 순교한 성지”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이용해 성역화사업을 가속화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2011년 8월 중구청에 제안한 이 사업은 예산 문제만 놓고보면 사실상 국가사업이다. 그러나 공원 조성 과정에서 고려시대 여진족을 물리친 윤관 장군의 동상 등이 사라지고 한국 천주교 사료 140여종이 전시되기 시작하자 ‘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와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는 “공공역사 독점”이라고 비판했다. 이곳에서 처형된 인물 383명 중 가톨릭 순교자는 21.4%(82명)지만 나머지 78.6%는 허균, 홍경래, 전봉준 등 사회변혁자와 일반 사범이라고 반박했다. 때문에 “반외세 반봉건 반부패를 외치며 민중을 위해 싸운 동학지도자 김개남, 성재식, 안교선, 최재호, 안승관, 김내현 등이 효수당한 곳인만큼 명실공히 대한민국 역사가 흐르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문제 의식을 느낀 서울 중구의회가 2017년 6월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예산안을 부결시키자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신자 15만명의 공사 촉구 서명을 받아 의회에 제출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결국 그해 12월 구의회가 사업예산 87억원을 승인하면서 공사가 재개됐다.
서소문성지 역사공원 현양탑에는 외세에 맞서 백성들과 함께 싸운 동학지도자 이름은 없다. 하지만 서양신부에게 백서를 보내 “어서 함대를 끌고와 조선을 쳐부셔줄 것”을 요청한 황사영 이름은 있다.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원회’는 “황사영 백서사건은 천주교에서 순교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일반 국민 입장에선 일본에 나라를 바친 친일매국노와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거대 권력이 된 가톨릭 앞에서 성지화 반대운동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고 서소문역사공원은 애초 계획과 달리 가톨릭을 위한 성지로 완전히 변질됐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5호 / 2022년 8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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