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에 등록된 이모지에서 불교를 상징하는 ‘사찰’ 이모지는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독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물론 일본 토속종교 신도(神道)의 성소(聖所) 상징하는 이모지까지 제공되고 있어 불교계에서는 “사실상 ‘불교 패싱’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효과적인 의사소통 도구로 이모지(Emoji)를 모바일 기기에 탑재해 제공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사용자 피드백과 요구를 반영해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 UX(사용자경험) 팀에서 대대적인 이모지 디자인 개선을 추진했다. 표정, 장소, 동물, 깃발 등 8개 카테고리에 2200개의 이모지를 제작했고,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관련 홍보 게시물에 따르면 이 이모지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모지”를 전제로 조사와 연구를 거듭해 나온 결과물이다. 이모지 디자인 담당자들은 “삼성전자만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인종, 국적, 나이 등에 상관없이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모지를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삼성전자의 이모지 디자인 방향성은 직업의 성평등과 연령층의 다양화로 구현됐지만, 정작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장소 카테고리에 속하는 ‘종교적 장소’ 이모지에는 기독교의 ‘교회’,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와 대표 성지인 ‘카바 신전’,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 ‘힌두교 사원’, 일본 토속종교인 신토 건축물인 ‘토리이(鳥居)’ 등 6곳만 검색될 뿐, 불교 ‘사찰’ 이모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삼성전자는 국내 브랜드평판지수 1위 기업이자 43개국에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대표기업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5억 명 이상의 신자를 보유하고, 국내 종교 순위 1, 2위를 다투는 불교의 사찰 이모지를 누락한 것은 고의 여부를 떠나 ‘특정 종교 패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불교’를 나타내는 이모지 역시 타종교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6개 이모지가 도출되는 ‘기독교’와 달리 ‘불교’를 상징하는 이모지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뜻하는 ‘법륜(法輪)’이 유일하다. 기독교 관련 이모지는 라틴·정교회 십자가, 교회 2곳, 천사, 묵주로 가장 많았고 모스크, 카바 신전, 월성기(이슬람교 상징, 초승달과 별), 터번을 쓴 인물 이모지가 검색되는 이슬람교가 그 뒤를 이었다. 유대교는 유대교 회당, 유대교 상징 촛대와 별 표식 이모지가, 힌두교는 우주의 소리를 의미하는 ‘옴’ 자와 힌두교 사원 이모지가 도출됐다.
게다가 이모지 검색란에 ‘사찰’ ‘법당’을 특정해 입력해도 관련 이모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영어로 사원 혹은 사찰을 의미하는 ‘temple’을 검색하는 경우엔 힌두교 사원과 유대교 회당 이모지만 확인된다.
이에 대해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 스님은 “한국인의 10명 중 7명이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쓴다. 그런데 불교 이모지만 배제됐다는 건 다종교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종교 규모에 따른 형평성의 문제를 떠나 어떤 종교도 소외되어선 안 된다. 특위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신속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장 향문 스님은 “글로벌 기업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가 불교 사찰 이모지를 누락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모지에서 불교 관련 이모지만 제외된다면 향후 한국불교 발전과 포교에 큰 장애로 작용한다. 개선을 위한 종단적 움직임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관계 부서에 전달해 내부 논의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아직까지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김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