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이 김대건 신부가 걸었던 모든 길을 ‘김대건 순례길’로 조성해 빈축을 사고 있다. 김대건 신부가 풍랑을 만나고 잠시 쉬어간 길마저 성지화하는 등 특정종교에 휘둘려 시민 혈세를 낭비하고 ‘줏대 없는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건길이 조성된 곳은 서울시를 비롯한 인천, 경기도 용인, 충남 당진, 제주도 등 5곳이다. 서울 시내 조성된 순례길 24개 가운데 일부 12.7km는 2020년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로 지정됐으며, 용인시는 2021년 약 15억원을 들여 48.3km구간의 ‘청년 김대건 길’을 조성했다고 알려졌다. 당진시는 2010년 60억원 이상을 소요, 김대건 탄생지를 중심으로 13.3km구간의 ‘버그내 순례길’을, 제주도는 2012년 ‘김대건이 풍랑을 만나 표착한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해 12.6㎞구간을 김대건길로 선포했다. 인천시도 지난해 12월 인천관광공사·인천교구와 협약을 체결, ‘김대건 신부 서해 항해 발자취’를 만들기로 했다.
지자체들이 우후죽순 만드는 순례길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대건이 한국 반만년 역사에서 전국적으로 길을 조성할 만큼의 인물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순천대 사학과 교수(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위원)는 “김대건이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를 우상화하는 사업에 국민 세금을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다”라며 “더구나 유형유산이 아닌 무형유산에 대한 세금 집행은 더욱 신중을 기해야한다”고 했다.
국내 종교인구 비율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한국리서치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비종교인은 50%에 육박, 불교와 개신교 20% 내외, 천주교는 10%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사, 종교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어떤 부분을 참고하더라도 국토 곳곳을 특정종교인 길로 만드는 행정이 무분별하고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관광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본지 취재 결과 순례길의 관광 효과 측정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당진시 측은 “개방된 길, 도보 이동이라는 순례길 특성에 따라 관광 효과를 측정할 수 없다”고 했다. 제주도청 측도 “관광 효과 측정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답했다. 다만 용인시의 경우 3년간 4만5천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돼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스님은 “한국은 다종교사회임에도 순례길이라는 미명하에 온 국토가 천주교화 되겠다”라며 “이 논리라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 발자취와 길은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나”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들은 특정종교인에 대한 과도한 행정을 멈추고 사업 추진시 보편타당한 근거와 역사성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