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의상 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에 십자가를 달아놓고 가톨릭의 상징으로 안내해 “종교 공정” 물의를 빚었던 서소문역사박물관의 나전칠화가 결국 철거됐다.
서소문역사박물관은 11월14일 법계도 왜곡 나전칠화를 철거했다. 나전칠화가 걸려있던 자리에는 대형 항아리 다섯 개와 함께 현재 ‘전시 준비 중입니다’라는 팻말이 있었으며, 나전칠화를 설명하는 자리에는 목가구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철거된 나전칠화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제2상설전시실 벽에 설치됐었다. 칠화의 이름은 ‘일어나 비추어라’로, 서소문박물관은 “순교정신을 담아 한국 가톨릭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형상화 것”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논란의 법계도는 작은 원들로 중간 중간에 여백을 줘 마치 가톨릭 묵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법계도 끝에는 십자가를 매달았으며, 십자가 안으로는 예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태극기 위에 군림해 서있는 듯 보이게 했다. 작품을 기획한 최기복 옹청박물관장은 2015년 10월 나전칠화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에서 법계도가 아니라 강강술래라고 발언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불교계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10월7일 첫 보도 이후 합천 해인사(주지 현응 스님)는 10월13일 서소문역사박물관과 그 운영 주체인 서울시 및 중구청을 비롯해 천주교서울대교구와 나전칠화가 제작 설치된 여주 옹청박물관 등 5곳에 공문을 보내며 "해인도를 왜곡한 나전칠화를 즉시 철거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또 이 문제를 담당할 대책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에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진각 스님과 심우 스님을 임명했다.
하지만 서소문역사박물관과 천주교서울대교구는 회신 공문에서 “해인도의 형상은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라며 “나전칠화는 해인도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 것”이라고 철거 요청을 회피했다. 여주 옹청박물관도 "해인도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에 10월26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위원장 도심 스님)가, 10월27일 의성 고운사(주지 등운 스님)가 입장문을 내고 “공개적으로 철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다시 한 번 법계도 철거를 요구했다. 다음날인 10월28일 조계종 전국 교구본사는 "천주교의 종교역사 공정"으로 규정하고 가톨릭 측의 사과와 중단을 촉구했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측의 역사왜곡을 지적하는 현수막도 내걸기로 했다.
조계종 중앙종회도 11월10일 226회 정기회서 “천주교의 사과 및 전시물의 철거”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중앙종회 다음날인 11월11일에는 명동성당과 서소문박물관 앞에서 스님과 불자가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58호 / 2022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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